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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50-58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하소서

by 생명153 2024. 3. 30.

본문 : 고린도전서 15:50-58

제목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하소서

 

- 목차 -

1. 부활에 대한 인식

2. 죽음과 부활의 실제

3. 끝이 아닌 죽음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어 무덤에서 쉬시다가 3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비록 죽어도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승리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죽음을 이기고 무덤이 없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요즘 뜻이 있는 기독교인들은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않습니다. 죽으면 시신을 화장하여 가루를 납골하지 않고 산하에 흩어 뿌려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 버립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죽은 후에 완전히 자기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경향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순천 제일교회에 시무하셨던 고 박정식 목사님이 위암으로 고생하시다가 죽으면서 자신의 신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도록 하고, 남은 시신은 의과대학에 실험용으로 기증하고 아예 무덤을 만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목회에 크게 성공하고 총회장까지 지내신 분인데, 지금 그분의 흔적은 세상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 기독교의 부활 신앙을 믿는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 부활에 대한 인식

 

우리는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부활에 대해서 알아야 할 성도의 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죽음이란 인간의 육신 수명이 다했다는 증거입니다. 삶을 마침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죽음이 있는가 하면, 주님 밖에서의 죽음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죽음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으로 살다가 죽는 죽음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14:13)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죽는 죽음은 결단코 두렵지 않습니다. 무섭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것이기에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괴로움이 많은 세상에서 괴로움이 없는 천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기에 성도는 죽음을 축하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 밖에서의 죽음은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죽음 후에 지옥에 갈 것을 생각하니 죽음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죽음을 피하려고 있는 힘을 다 써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죽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자기의 죽음이 주님 밖에서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무서운 건 자기의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밖에서의 죽음은 솔직히 무섭고 두려울 것입니다.

 

부활은 문자 그대로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는데 생명의 부활 후에 영생으로 가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구원과 부활은 신앙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죽은 성도는 주님께서 세상에 재림하시는 날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때 선한 일, 즉 구원의 확신으로 믿음의 의로 살면서 주님을 잘 섬긴 성도는 생명의 부활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앙으로 비록 교회를 다녔어도 악을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도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부활 신앙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죽음과 부활의 실제

 

그러면 선한 일을 행한 성도, 믿음으로 주님 안에서 죽은 성도의 죽음과 부활의 실제는 무엇입니까? 그 해답을 알고 있다면 부활 신앙의 확신과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 성도의 죽음과 부활은 육체적인 고통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고통과 슬픔이 많고 질병과 죄악이 관영한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으로 이사하는 일입니다. 고달픈 인생 여정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나라, 곧 영혼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때 하늘나라 천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그 숱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힘든 많은 의무와 책임에서도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둘째, 성도의 죽음과 부활은 천국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이 없도다/ 그 어둔 밤이 지나고 화창한 아침 되도다/ 영화롭다 낙원이여 이 산 위에서 보오니/ 먼바다 건너 있는 집 주 예비하신 곳일세/ 그 화려하게 지은 것 영원한 내 집이로다”(찬송가 2451) 이렇게 찬송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에 죽음의 문을 통과한 성도들이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의 모습이 아름답고, 장엄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딤후 4:8)다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부활 신앙은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좋은 천국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의 삶입니다.

 

셋째, 성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50)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혈과 육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죽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혈과 육은 썩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하늘나라는 썩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썩을 육신은 썩지 않을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성도는 불가불 죽음의 문을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의 죽음은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3. 끝이 아닌 죽음

 

죽음은 성도에게 절대로 끝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 부활이 있기에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51-53) 말씀했습니다. ‘죽음과 부활은 우리에게 공개된 비밀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처럼 성도도 죽으나 다시 삽니다. 사도 바울이 다 잠 잘 것이 아니요(:51)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썩지 아니할 영화로운 육체로 살아납니다. 또한 살아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화로운 육체로 변화되어 영원한 천국 생활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성도는 이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 지금은 잠시 사단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지금은 죄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악이 선을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사망은 주님 앞에 굴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부활 신앙으로 무장한 성도는 사단이나 죄악이나 사망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부활 신앙의 힘입니다. 부활 신앙의 능력입니다. 부활 신앙의 승리입니다.

 

첫째, 우리는 부활의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7). 우리가 죄악을 이기고,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고통을 이기고, 죽음까지 이기게 하신 부활의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잘 되고 병이 낫고 좋은 일이 있어서 드리는 감사는 유치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부활에 관한 감사이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음에 드리는 감사가 최고의 감사입니다.

 

둘째, 우리의 부활 신앙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58a). 우리에게 부활 신앙이 없으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우리를 유혹해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마귀의 특성은 성도들의 믿음을 흔드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를 미혹하여 마음에 불만과 불평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래서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게 합니다. 목사를 의심하게 하고, 장로를 비판하게 하고, 성도를 헐뜯게 하면서 교회 봉사를 막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이 있는 성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셋째,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58b). 주님의 부활을 믿고 체험하여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소유한 것은 제2의 인생을 사는 출발점이라고 말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이전에 육신에 속한 모든 죄악을 무덤에 장사지냈으니, 이제는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열심히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을 체험한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하면 성도의 수고가 절대로 헛되지 않고 현세와 하늘나라에서 아름답게 빛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부활 신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입니다. 부활 신앙은 돈과 바꿀 수 없습니다. 명예와 권세와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의 부귀공명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부활 신앙을 성도의 가훈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부활 신앙을 가르치면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고 승리할 줄 믿습니다. 부활 신앙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최대의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실패가 있고 질병이 있어도 부활 신앙으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이렇게 기도하면서 죽음의 초대에 담대히 응합시다. 그리하여 부활의 영광을 체험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천국의 유업을 받아 영생을 누립시다. ‘죽음과 부활의 은총이 성도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여 때마다 일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