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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7~15절 보배를 담은 질그릇

by 생명153 2024. 3. 12.

고린도후서 4장 7~15절 말씀을 중심으로 " 보배를 담은 질그릇"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 목차 -

1) 질그릇 같은 인간

2) 심히 큰 질그릇의 능력

3)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 고린도후서 4장 7~15절  보배를 담은 질그릇 동영상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현대어 성경-이 귀한 보물 지금 우리들 속에 빛나고 있는 이 빛과 힘은 깨어지기 쉬운 그릇! 곧 우리의 연약한 육체 속에 들어 있습니다.)

 

 

1) 질그릇 같은 인간

 

사도바울은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연약함!

깨어지기 쉬운 그릇!

천한 그릇!

64:8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 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2: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인간! 육체의 재료는 흙입니다.

3:19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흙으로 만든 사람 속에 생기(하나님 형상),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고 섬기는 영)을 부어 주시고 생령으로! 살아있는 영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진흙으로, 한편은 하나님의 영을 넣어 주셔서 살게 하셨습니다.

흙으로 된 사람이지만 생령이 되었습니다.

육체이며 또 영적존재입니다.

그리고 만물을 주셨습니다.

1: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놀랍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1:31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시편기자는 노래합니다.

8:3~8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 이다

 

비록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꾀하여 죄에 빠진 인간!

연약한 질그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4:2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워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진흙으로 만든 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연약한 질그릇!

천히 쓰다 깨어질 질그릇!

그러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질그릇이 되고 만 것입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보배를 담을 수 없는 질그릇에 보배를 담으시고 보배 그릇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질그릇은 값도 싸고, 볼품도 없고, 깨어지기 쉽습니다.

보배를 담을 만한 그릇이 아닙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인간이 보배를 얻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다메섹 도상에서 빛난 광채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로다

그런 사도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담는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9:15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보배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그릇으로서

사도바울은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 바울에게 예수보배를 담으셨습니다.

 

 

2) 심히 큰 질그릇의 능력

 

고후4: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우겨쌈을 당하여도(들리보메노이)-포도즙을 짜기 우해 누룬다는 뜻

-강력한 힘으로 사방에서 악한 세력이 달려들어도 겁내지 않고 물리칩니다.

고후4:8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아포루메노이)-어리둥절해지다. 혼란해지다. 불확실해지다.

-동서남북을 바라봐도 빠져 나갈 곳이 없는 것.

()요셉의 구덩이-낙심치 아니하여 : 끊어지다->희망,꿈이 사라지다.

낙심치 않는 능력(웅덩이에서 건져짐->애굽노예->보디발 아내의 유혹->감옥)

낙심치 않습니다.

꿈을 붙잡습니다.(지도자의 꿈->형들은 내게 절 할 것이다.

해와 달과 별->애굽통치=>세상을 구할 자로 쓰일 )

고후4:9핍박을 받아도

핍박을 받아도(디오코메노이)사냥하다는 뜻-대적 자들이(원수마귀) 우리를 사냥의 표적으로 삼아

사냥감으로 쫓기는 신세->핍박을 받는 것

고후4:9버린바 되지 아니하며-(13:5)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기고 또 이깁니다.

고후4:9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카타 바로 메노이)-갑자기 습격을 당하다. 평화로운 믿음의 가정에

갑자기 환란풍파가 불어 닥쳐 살 소망을 끊어 버림

 

주님의 교회 정성기 집사의 간증

가장 큰 잘못은 199284일 오후, 4회 전교인 여름수련회장에서 일어났다. 소년부 어린이였던 정민홍 군이 생명을 잃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일종의 안전사고였다. 전혀 사고가 날 장소가 아닌 연수실 내에서의 사고사(事故死)였기에 충격은 더했다. 황급히 달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이미 절명했다는 의사의 사망확인이 내려졌을 때,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수련회를 총지휘한 나의 실책이요,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전 교인들이 참여한 수련회장에서의 사고인 만큼 교회가 큰 시험에 빠질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 일로 인하여 다섯 번을 놀라야 했다.

뜻하지 않았던 민홍이의 죽음, 그것도 수련회장에서의 죽음으로 인하여 놀란 것이 첫 번째였고, 사고 이후 민홍이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의연한 모습으로 인하여 놀란 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교회 예배당에서 드려진 민홍이의 장례예배 시, 민홍이의 아버지인 정성기 집사님의 인사말로 인하여 세 번째 놀라야만 했다. 정집사님은 교인들 앞에 서서 다섯 가지를 감사드리는 것이었다.

첫째 주님께서 민홍이를 모태에서부터 믿게 하시고, 어릴 때 유아세례 받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둘째 이 세상의 죄악과 탐욕에 오염되기 전, 순결한 영혼의 상태로 아들을 하나님 나라로 부러 주셨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셋째 교통사고나 세상의 궂은 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배우던 수련회장에서 불러 주셨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넷째로 그동안 민홍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당장은 공허하게 보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지 않는다 하셨으매,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고 이후 교인들이 보여준 큰 사랑에 대하여 교인들에게 감사했다.

교인들은 모두 깊은 깨달음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 주일 교인들은 정집사님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는 강단에 꽃을 바치고, 교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는 전교인이 먹을 분령의 떡을 준비한 것을 보고 네 번째로 놀랐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하여 교회가 시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은혜 속에서 더욱 굳게 세워짐으로 인해 놀란 것이 마지막 다섯 번째였다. 슬픔을 초월한 정 집사님 가족들의 성숙한 신앙적 모습이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8:35~39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는 사람은

구원받은 천국백성으로서 보배를 담은 질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은 질그릇이며 천하고 싼값이지만

보배를 담은 귀한 그릇으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이는 보배를 담았기 때문이지 질그릇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어떤 사람이 보석상에서 보석을 보는데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한 보석은 빛도 색깔도 없이 그저 있기에 저것도 보석입니까? 물었습니다. 그것은 보석중에 오팔이라는 보석이었습니다.

이 보석은 교감보석으로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든 목이든 접촉이 있어야 빛을 낸다는 것입니다. , 보석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보석은 형언할 수 없는 빛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면

질그릇이기에 빛은 곧 사라지고 질그릇만 남습니다.

그러면 찬란히 빛나던 보배를 담은 그릇은, 하찮은 질그릇일 뿐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 엘리 제사장 말년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전쟁을 했으나 이스라엘이 패하여 4,000명의 군사를 잃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나가 싸우자!

실로 성소에 있는 법궤를 메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메고 전쟁에 나아갔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진중에 들어오자 병사들은 와! 할렐루야를 외치며 진중이 진동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 여호와의 신()이 진에 이르렀다.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라 대장부가 되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이 되지 않으려거든 담대히 싸우라!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법궤를 빼앗기고 30,000명의 보병이 전사 했습니다.

(성소에 수종드는 여인들을 겁탈하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의 좋은 것을 먼저 먹고 마시고...)

홉니와 비느하스의 범죄로 하나님이 떠나신 빈 법궤만 왔기 때문입니다.

대 참패를 하고 홉니와 비느하스 두 제사장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법궤는 빈 나무 상자에 불과 했습니다.

 

인간은 질그릇입니다.

천하고 무능합니다.

깨어지기 쉽니다.

예수님이 보배입니다.

그분을 모시고 살 때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보배를 믿음으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질그릇입니다.

교만이나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보배를 담을 만한 그릇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보배를 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질그릇에 보배를 가진 자 임을 깨닫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이런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습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우리의 그릇에 늘 보배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살게 하옵소서.

 

고린도후서 4장 7~15절  보배를 담은 질그릇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