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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1~17절 제목 평화의 왕을 섬기며 찬송하게 하소서

by 생명153 2024. 3. 25.

마태복음 21장 1~17절을 중심으로 평화의 왕을 섬기며 찬송하게 하소서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 목차 -

1.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2. 예수님께서 쓰신다니 즉시 드리는 사람

3. 예수님을 찬송하는 무리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을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환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때는 유대인의 유월절이었습니다. 유대의 열두 살 이상 된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대단히 큰 명절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유월절에 죽인 양의 수가 186천 마리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당시, 무려 2565백 마리의 양을 잡았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족에 양 한 마리씩을 바쳤으니 유월절에 모인 사람들의 수가 270만 명 이상이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숫자라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감람산 벳바게 마을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면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있을 터이니 끌어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귀를 끌어와 자신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예수님이 타시도록 하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셨을까요? 왕이라면 마땅히 왕의 황금 마차를 타셔야 합니다. 개선장군이라면 백마를 타셔야 합니다. 대통령이라면 방탄 리무진을 타셔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까? 그 까닭은 예수님은 겸손한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5). 예수님은 사랑과 평화, 용서와 영생을 위해 오신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간호사였던 나이팅게일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가 부상병을 간호하고 13천 명의 환자를 치료하여 군인들로부터는 싸움터의 천사로, 또는 광명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 국민의 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참혹했던 크리미아 전쟁이 영국과 터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오고,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자 나이팅게일이 영국으로 귀국하려 했을 때 전 영국 국민은 그녀를 전쟁의 영웅보다도 더 존귀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명예 훈장이나, 자기의 영광을 받기를 즐기려고 하지 않는 마음으로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예정을 바꾸고 1956815일에 아무도 모르게 프랑스로 가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영국 국민은 한때 크게 실망하였으나, 나중에 나이팅게일의 겸손한 태도를 알고 더욱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교만으로써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겸손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따르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다면, 오늘 우리는 무릎으로 주님의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겸손하신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님과 같이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쓰신다니 즉시 드리는 사람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2-3)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의 말을 듣고 이유를 묻지도 않고 나귀 새끼를 내준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이름도 성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무명인입니다. 그런데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셔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말씀하신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즉시 보낼 수 있는 헌신하는 무명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즉시 보낼 수 있는, 즉시 헌신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서 즉시라는 말씀에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쓰시겠다니 보낼까 말까 하고 오래 생각해볼 필요가 없이 무조건 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즉시 보내리라 성도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무조건 순종하는 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은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씀에 즉시 헌신한 사람입니다. 즉시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나귀 새끼는 예수님께서 타시는 십자가가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인류 구원에 커다란 봉사를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소유를 쓰시겠다면 무엇이든지 즉시 드려서 헌신하는 종들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예수님을 찬송하는 무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님을 찬송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9).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무리가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면서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이 말씀에서 호산나비나니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찬송을 불었던지 온 성이 소동하여(:10) 라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찬송은 어떻습니까? 크고 간절하고 열정적입니까? 최근에 성도의 삶 가운데서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찬송했습니까? 이 시간에 자신을 한 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찬송은 가슴에서 나와야 합니다. 입술로 부르는 찬송은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는 찬송을 예수님을 감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 찬송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사도행전 3장에 나면서부터 지체장애인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3:6) 말씀하니 그가 벌떡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3:8) 사람들이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찬송을 부르지 않고 못 배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려주일 새벽이고 사순절의 마지막인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먼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성도의 심령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따라서 겸손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시려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더 낮추고 겸손히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무엇이든지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즉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게 예수님께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도의 삶 가운데 오시면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찬송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찬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춤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놀라운 역사가 성도의 삶 가운데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선택하시고 묵묵히 가셨습니다. 주님만 혼자 보내지 마시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무명의 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나귀 새끼를 내주었듯이 헌신하는 성도가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