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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13절 불건전한 종말론

by 생명153 2024. 3. 18.

베드로후서 313절을 중심으로 "불건전한 종말론"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 목차-

1. 불건전한 종말론 분별 체크리스트입니다.

    가. 요한계시록의 상징이나 비유를 지나치게 현 시대에 끼워 맞춰 해석한다.

    나. 자신들만이 마지막 때의 날자 혹은 말세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 행위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

    라. 특정한 지역을 도피처로 제시하는 경우입니다.

    마. 구약의 절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가르칩니다

    바. 검증 불가능한 음모론으로 공포심을 조장한다.

2.  건전한 종말론은 가슴벅찬 소망입니다

 

* 베드로후서 3장 13절 불건전한 종말론

 

 

 

 

1. 불건전한 종말론 분별 체크리스트입니다.

 

가. 요한계시록의 상징이나 비유를 지나치게 현 시대에 끼워 맞춰 해석한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는 오늘날의 칩이다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극단적인 해석을 신천지 집단이 잘하고 있습니다. 신천지가 환상시 실상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기록했는데 요한계시록 몇 장 몇 절의 사건은 신천지에서 몇 년 몇월 며칠에 있었던 사건입니다라고 해석하는 자들이 불건전한 종말론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나. 자신들만이 마지막 때의 날자 혹은 말세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다미선 교회입니다. 1992.10.28.일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날짜를 정하는 종말론자들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하나님의 교회1988,

1999, 2012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다라야 합니다.

마태복음 24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2)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다. 행위로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긴다.

마태복음 24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자들입니다. 2010년도에 전 세계 미전도 정족이 1500개 남았다 2018년도에 전 세계의 미전도 정족 500개 남았다 그러니 우리가 빨리 전도하여 이 땅에 미 전도 정족이 없게 되면 주님이 재림하시게 됩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점점 미전도 종족 숫자가 줄어드는 거예요 자 몇 개요 2018년도에 500개 남았대요 그럼 지금은 2024년이니 더 줄었을 거 아닙니까 자 그러면 우리는 지금부터 어디 가셔야 되냐면 나머지 한 200300개 남은 미전도 종족에게로 가시면 돼요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사실은 우리가 지금 성도님들과 제가 여기서 지금 예배를 드릴 이유가 없어요 빨리 가면 되잖아요 지금 500개 지금 대한민국에 그 기독교 인구가 개신교 인구가 몇 명인데요 그럼 빨리 짝지어 가지고 빨리 가서 예수님 다시 오시는 거 아닙니까 이게 이제 너무 지나친 어떤 성경을 해석할 때 지나치 문자적인 접근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부분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상징으로 해석을 하기도 해요 이런 균형이 필요하거든요

전 세계에 예를 들어서 뭐 천개의 미전도 종족이 있는데 그거 다 전하면 예수님 빨리 오시니까 우리가 더 빨리 하면 뭐 2030년 안에 끝낼 수 있다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건 사람들로 하여금 과한 과도한 잘못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이야기라고 하는 거죠 건강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성경 신학자들 중에이 모든 민족을 전 세계에 뭐 종종 몇 개 이런 식으로 해석한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보편타당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미국의 로셔 하는 선교사 출신의 목회자가 계시는데 그분이 말을 좀게 하시는 분이긴 하지만 정말 헌신적으로 살아가시는 분 그분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되게 공감이 되는데 선교지에 필요한 건 당신의 헌신이 아니라 당신의 열정이 아니라 진리라고 이야기 하 물론 그 얘기가 열정과 헌신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당연히 열정이 있고 헌신해야 되겠지만 그 열정과 헌신은 진리 위에 쎄워야 되는 겁니다

 

라. 특정한 지역을 도피처로 제시하는 경우입니다.

몇 년도에 몇월 며칠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등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공포심을 불러 일으켜서 특정 지역으로 도피하라고 하여 집단 생활을 하도록 유혹하는 행위입니다.

불건전한 종말론의 특징은 우리의 건강한 일상을 망가뜨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한 일상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건강한 일상생활하는 곳이 내 선교 지요 내가 복음을

전할 자리요 거기가 내가 있어야 자리라는 것을 꼭 좀 기억하시면서 거기서 건강한 일상을 살아내시는 일들을 해 나가시는 걸 그것이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이 꼭 좀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디 안 가셔도 되니까 가정 잘 지키시고 교회 잘 지키시고 그렇게 하시면 되겠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마. 구약의 절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가르칩니다

 

구약절기를 잘못 풀어내는 무리가 있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은 봄이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을 상징한다 나팔절 대속죄절 초막절은 가을 절기로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한다라고 가르칩니다.

 

가을 절기가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하니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감람산에 가을에 오실 거야 그래서 이스라엘만 쳐다보고 이스라엘로 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어떤 구약의 절기를 예수님의 종말 시간표 하나님의 시간표를 하면서 때려맞추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불건전한 종말론을 심취하여 예수님이 가을에 오시니 이스라엘 가봐야 된다고 가족하고 등지고 이스라엘로 가고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불건전한 종말론은 항상 우리의 일상을 망가뜨려요

자꾸 어딘가로 떠나게 만들고 내가 지금 하던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뭔가 어디를 뭔가를가 추구하게 만들고 이런 식으로 그래서 구약의 절기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봄 절기 가을 절기로 나눠서 예수님 가을에 재림하신다라고 하는 주장들을 꼭 좀 기억하셨다가 이것은 근거가 없고 기독교회가 주장하는 건전한 종말론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만 우리 성도님들이 좀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바. 검증 불가능한 음모론으로 공포심을 조장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이 베리 칩이다. 짐승의 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두려움을 심어주는 자들이 불건전한 종말론 자들입니다.

이런 음모론을 기초로한 불건전한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첫 번째시대를 분별해하라두 번째는 말씀을 더욱 가까이해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한다입니다. 이 말은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시대를 분별해야 됩니다 말씀 가운데 깨어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맞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걸 어떤 사람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내 안에서 소화가 다르게 이루어져요 무슨 얘기냐면 자 그 데이트 폭력 보통 일어날 때 데이트 폭력에 대해서 예방할 때 전문가들이 되게 단순하게 한결같이 가해자에게 눈 딱 쳐다보고 야 넌 나한테 이렇게 하지 마 이렇게 해야 돼요 그런데 그걸 잘 못 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왜냐하면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져 있고 가스라이팅 같은 거 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심리 자체가 아씨 내가 이렇게 했는데 옳은 행위를 했는데 아 이거 내가 잘못한 건가 자존감이 떨어지다 보니까 계속해서 그런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돼요

 

자존감이 진짜 높은 사람이 잘못을 지적받으면 대응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 일단 잘못을 인정합니다 근데 인정하는 방법이 남달라요 잘못을 인정하고 곧바로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할 수 있지 이렇게 나와요 그리고 두 번째 한 마디를 더 얹어요 그럼 네가 봤으면 네가 하든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떨어진 자는 지적하면 아 그렇지 내가 잘못됐지라고 말하며 지적자에게 종속이 되고 맙니다.

 

내가 종말에 대해서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말씀 가운데 시대를 말씀 가운데 깨워서 분별해야 시 시대를 분별해야 이런 정 의 일변도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그래 내가 잘 분별하고 내가 믿고 있는게 이건데라고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 그렇지 내가 못 믿고 있지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있지 내가 시대 가운데 분별하지 못하고 있지라고 자신을 완전히 격하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적 종속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예요이 얘기는 왜 불건전한 종말론자들이 계속해서 공포심을 심어주는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영적인 자존감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걸 받아들였을 때 저 사람 말이 맞고 나의 확신이 틀리고 그렇게 종이 서 그 일어나고 가스라이팅 일어나는 겁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불건전한 종말론 이런 체크리스트를 받는데 정말 이것도 중요하죠 정보가 있으니까 근데 이걸 통해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이 질문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종말은 과연 공포일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정말 무서운 사건들만 있어서 정말 두려움만 느낄까라고 하는 것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이라고 하는 정말 공포일 종말이 공포라 왜 초대교회 성들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소를 외쳤을까이 질문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있는 우리주변에 있는 수많은 불건전한 종말 원들의 공통점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는 방식인데 이게 먹힌 거예요

 

그러면 정말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공포스럽게 여겼다는 방증인 왜 사람들은 종말을 공포라고 여겼을까?

 

성경은 정말 종말을 공포라고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단순한 지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거죠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입니다 사실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말씀 입니다 저는이 말씀 안에 우리 기독교 신앙의 정수가 담겨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베드로서 313절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바라보는 바라보도다 되겠죠 여기서 우리는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첫 번째로 설명이 됩니다 뭐냐하면 우리는 우리는 마지막에 뭐예요 바라보도다 우리는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소망하는 자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소망하고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바랍니까? 천국을 바라봅니다.

천국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상 예수님 재림으로 인해서 완성될 그 나라와 그 땅을 정확하게는 이사야 베드로후서 요한 계시록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새하늘과 새 땅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천국의 완성 천국의 극치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종적으로 거할 장소의 천국의 정확한 표현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게 신천지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봐요 그러데 우리가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너무 가슴벅찬 것이 뭐냐면 첫 번째는 의가 있어요 성경에서 의라고 할 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이 강하고 특별히 정의라고 할 때는 심판적 개념이 강한데 베드로서에서 사용한 이 의라고 하는 단어가 두 가지 개념을 다 담고 있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뭐냐하면 우리가 팔복에 보면 애통하는 자 애통 하잖아요 막 슬퍼하기도 하고 근데 애통하는 궁극적 이유가 물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 가운데 저보다 훨씬 더 연배가 높으신 성도님들 계시니까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으시고 세월의 풍파를 많이 겪으면서 살아오시면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 애통할 수 있죠 우리는 잘한 것들에도 애통을 해요 그 제가 요즘에 그런 얘기 했거든요 야 인생 죄송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해해 주시고 들어주십시오 인생은 일의 행복을 가지고 구의 고통을 견디는 거 같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실 살다 보면은 뭐 행복이 구고 고통이 1인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죠 행복이 1인데 구의 고통을 견디고 그 행복 일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구의 고통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게 우리의 신앙인 거 같더라고요 그렇게 막 살아가는데 새 하늘과 새 땅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뭐냐면 거기는 의가 있대요 의와 정의가 있대요 우리가 이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다 무너진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고 애통해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고 고통스러워하고 애통하는 이유가 내 삶이 잘 안 돼서도 있지만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의 정의와 그 공의의 시선으로 이 땅을 바라보니까 이 땅이 다 무법 완전히 박살이 나 있는 거예요

 

2.  건전한 종말론은 가슴벅찬 소망입니다

이사야 116~9절 말씀을 보면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리와 어린양은 기본적으로 힘의 격차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이게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를 짓밟고 올라서야 성공했다고 표현하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사야 11장 말씀을 통해서 제가 정말 가슴이 벅찬 게 뭐냐면 이리하고 어린 양이 힘의 불균형이 있는 두 존재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우리가 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은 단순히 구원 받아서가 아니고 우리가 이 땅에서는 전혀 그 의를 맛볼 수가 없고 아주 잠깐 교회에서 맛볼 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를 미리 맛보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진 것들을 너무나 많이 봐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뭐냐하면 이리와 어린 양이 도저히 균형을 맞출 수 없는 두 존재가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살아가는지가 보고 싶은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면 바로 그 균형된 삶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이리와 양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그것을 보게 되니 가슴이 벅찬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는 겁니다 전혀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없는 두 존재가 힘의 균형이 맞춰지는 그 나라를 우리가 바라봐요 근데 너무나 가슴 벅찬 이유는 두 번째 맹신이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거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종말은 우리가 공포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거죠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외쳤던 이유는 단 하나 입니다 그렇게 핍박 가운데 예수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잡혀가서 죽고 막 이러니까 막 숨어서 예수님을 믿어야 되고 내가 예수 믿는다는 걸 고백하는 그 순간 잡혀가고이 사회에서 왕따가 되고 심지어 목이 잘리고 그런 사회 속에서 주 예수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이 다시 와야 자기들이 영화로 그리고 또 하나 자기들을 자기들을 억압했던 그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겁니다 악인들의 심판과 의인의 영화는 그들에게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신다고 했는데 그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실 거지만 여전히 그분을 믿고 따랐던 의인들은 영화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이 둘 사이에 어디에서 계신 것 같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잖아요 그것이 사실 우리 장로교단 신학에서는 이 믿음을 고백하는 것조차 나의 의지로 하기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그런 불가항력적 은혜를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원자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그 소망에 벅차서 살아가는 것이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종파 종말 를 공포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공포심을 조장하고 다가오는 그 종말론을 우리가 분별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불건전한 종말론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서움에 빠지게 만들고 뭔가이 땅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비밀한 것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미혹 흔들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거죠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 그때마다 이 구절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이 소망과 희망이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힘과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그렇게 되지 못한이 땅을 바라보면서 애통해하고 대신에 미리 맛보는 그 교회 안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의 것들을 잘 지켜 나고 살아간다면 그죠 정말 정말을 공포로 여길 수가 없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도적같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속을 바라보면서 그 땅을 기다리고 있다이 정체성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수많은 미혹 그 불건전한 종말 종말론 가운데서 바르게 분별하고 살아갈 수 있는 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 불건전한 종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