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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1절~10절.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

by 생명153 2023. 12. 1.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사도행전 31~10의 내용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앉은뱅이를 고치는 장면입니다. 제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 옆에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앉은뱅이가 구걸하고 있어요. 날마다 자리에 있는 사람이에요베드로도 알고 사람도 베드로가 사도인 걸 알아요. 그런데 어느 날 베드로가 가는데 또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자 이 베드로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우리를 보라 그러자 사람이 예수의 베드로를 바라보죠. 그때에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렌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으로 잡아서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곧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그가 일어섭니다. 이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서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그가 사도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모든 일을 다 아는 백성들이 놀랍게 여기며 또 놀랍게 여겼다 이런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충만받고 구체적인 이 표적은 오늘 첫 번째 표적의 사건이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 앉은뱅이 성경에는 40여 세 된 사람을 거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으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베드로의 능력으로 지금 앉은뱅이를 고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베드로를 쓰신 거예요. 하나님이 베드로를 쓰지 아니하면 여러분 우리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만약에 여러분들에게서 손을 놓고 그러면 여러분은 우리는 끝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붙들어서 쓰시면 우리는 아무리 연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 있게 쓰임 받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돼요. 우리 교회가 쓰임받고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 쓰임 받읍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잘 듣고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목차 -

1.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첫째 성전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2.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둘째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사람입니다.

3.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셋째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한 사람입니다.

 

1.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첫째 성전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한 사람입니다.

1절을 보면 제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누구 만나기 위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고 성전을 둘러보러 올라가는 게 아니고 기도하러 올라간 거예요. 기도하러 이 말씀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 첫째는 기도하는 사람을 쓰심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여러분들을 쓰십니다. 여기에 제 9시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세 시인데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성전에서 기도합니다. 369시 오늘날 우리 시간 오늘은 아침 9시 정오 오후 세 시 다니엘도 다니엘 6장에 조서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고 그랬어요.

그니까 유대인들은 경건한 자들은 하루에 세 번 작정해 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정했어요. 베드로도 역시 요안도 마찬가지 기도 시간에 지금 성전에 올라가다가 이런 기적이 일어난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씁니다. 사랑청대로 우리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산행전 11314절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어가 그들이 요하는 다락방에 올라가니 지금 감람산에서 이제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누가 있느냐 베드로 요한 야구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메 마테 알페요 아들 야구보 셜로신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열한 제자죠 가룟유다는 제 갈길을 같고, 열한 제자들이 지금 다락방에 오고 또 13 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 네 명의 이 남자 동생들이 있고 누이동생들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랬어요. 이들이 다락방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어요. 중심에 베드로와 요한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순절날의 이름에 그들이 다 같이 다락방에 모여 있었더니,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확 문이 닫혔는데 이 교회 안에 다락방 안에 바람이 부는 거예요. 웬일인가 하는데 위에서 불이 갈라지는 성령님이 그들에게 각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초대 교회를 이루고 그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서 담대의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그런 역사가 일어나요? 이들이 성령 춤만 받을 때 뭐 했느냐 기도하기를 힘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은 기도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쓰신 거예요.

사랑성도 여러분 말 잘한다고 하나님을 쓰는 게 아니고 똑똑하고 능력 있고 뭐 잘났다고 쓰는 게 아니고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셔야 해요. 전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 사건이 나오는데 여러분 이달리아 고넬료라는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경건하고 하나님을 동의하고 구제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 칭송받는 그러한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환상을 우리 하나님께 듣는데 그 이 욥바의 피장이 시몬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서 데려다가 말씀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자 경건한 총 세 명을 택하여서 이제 욥바로 보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때 무슨 일을 했느냐 4대 행전 109절을 보겠습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그때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각은 제 6시더라 지금 두 번째 시간이죠. 6시 정오쯤 되어서 지붕은 유대인들의 기도의 장소입니다.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 그런데 거기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봅니다.

하늘에서 큰 내 보자기가 내 내 귀퉁이가 메였고 보자기 안에 보니까, 거기에 부정한 짐승 있잖아요. 배로 기어다니는 것 뭐 굽 갈라지지 않은 거 못 먹는 그러한 율법적인 그러한 못 먹는 짐승이 꽉 차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거 먹어라 그래요. 하나님 나는 이런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습니다. 나 율법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때 보자기가 다시 올라가요 그리고 다시 내려와요. 똑같은 짐승이 있어요. 먹어라 그러니까 나 못 먹습니다. 나 안 먹습니다. 또 올라가요 세 번째 보자기가 똑같이 내려와서 먹으라 하니까 못 먹는다고 그래요. 그러자 하나님이 내가 정한 것을 네가 어찌하여 속되다 하느냐 잡아먹 먹어라 그리고 누가 아빠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 보니까, 세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보냈구나 그러면서 보자기 안에 있는 그러한 부정한 짐승은 고넬료 가정이에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한 자로 보아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며 근데 하나님은 이미 그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자기네들이 유대인 선민 사상으로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자 뜻을 보고 하나님이 가라는 뜻이구나 하고 이제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다 모여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들에게 오순절날 임했던 성령과 똑같은 성령이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내려왔습니다. 이것 역시 베드로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거예요. 베드로가 뭐 할 때에 제 6시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을 때에 베드로는 매사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요한을 하나님이 쓰신 거예요. 청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돼요.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축복이에요.

 

나라가 하나님께 쓰임받고 교회가 하나님께 쓰임받고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돼요. 그럴려면 첫째,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매사에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여러분 태어나셔서 30세 되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때부터 공생회가 시작되는데 세례받고 기도할 때에 하시는 하는 현상들이 누가 보면 3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면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세례 요한에게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는 디다 그저 베들어도 아니 예수님도 가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세례받고 뭐 하십니까? 기도하셨어요. 기도하여 예수님이 세례받고 기도하실 때에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첫째, 하늘이 열렸어요. 여러분 기도하는 시간은요,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에요.

 

하늘 문이 열려야 돼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힘들고 애써워도 하늘 문이 닫혀지면 안 돼요. 하늘 문이 열려져야 돼요. 그리고 하늘 문은 으로 내게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야 돼요. 그런데 하늘 문은 언제 열리느냐 기도하는 시간이 열리는 거예요. 기도하는 시간에 그리고 두 번째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에 의해 강림하시더니, 기도하는 시간에 성령님께서 임하셨어요.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성령님이셔요 같은 분이지만 이 땅에 하나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공생이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임했는데 뭐 하실 때에 기도하실 때에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은요, 성령 받는 시간이에요.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여러분에게도 성령임이 임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줬어요.

 

기도하는 시간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했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오늘도 똑같이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에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말이 정확하진 않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쓰신 것 역시 예수님은 기도하는 분이었어요. 매사에 예수님은 기도하셨어요. 성령 받으시고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어요. 한적한 곳에 또한 밤이 맞도록 시간 될 때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어요. 그리고 마태복음 26장에 오신 우리 십자가 전에 개선만에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신 거예요. 우리 예수님도 철저하게 이 땅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셔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도 기도하는 교회를 하나님이 쓰십니다. 여러분들 또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잘났다고 똑똑하고 능력 있다고 쓰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쓰시는 거예요. 베드로가 쓰임받은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쓰임받는 거예요. 우리 에스더서를 보면 민족을 구원한 이 에스더라는 여인이 나오죠. 이 에스더는 원래 유다인인데 여러분 이 아하수르 왕의 왕비로 간택되어서 이제 왕후로 되어 있는 때에 아칸 하만이 유다인을 다 죽이려고 이미 왕의 재가를 얻어서 금령으로 조세를 반포한 상태에 1213일이 되면 페르시아에 있는 그러한 모든 유다인은 이제 다 죽게 돼 있어요. 그때 유다인 모르드개 에스더의 삼촌이죠.

 

이 에스더에게 에스더 414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때의 뇌가 만일 잠장하면 유다이는 다른 데로 말미암아 노인과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 너와 네 집은 멸망하리라 내가 왕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하느냐 지금 애써 너는 왕후라고 너는 죽음을 면한다고 생각하지 마 말아라 지금 이민족이 죽게 되었는데 네가 왕으로 있으면서 네가 잠잠하면 하나님은 유다이는 다른 데로 구원하겠지만, 너 집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자 이 애스더가 삼촌 내가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자가 이미 벌써 30일 됐습니다. 그 아세르 왕 옆에는 수도 없는 많은 여인들이 있어요. 근데 30일 동안 부름받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잊혀져 가는 여인이라는 뜻이죠.

그러면서 에스더가 당신은 가서 수산궁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나도 나의 시녀 3일 동안 밤낮 물도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마셔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내가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라 하면서 에스더는 자기 시녀들과 함께 3일 동안 물도 먹지 않고 또 음식도 먹지 않고 금식하고 참여 기도했어요. 당시 이 교레는 아무리 왕후라 할지라도 왕이 부르지 않고 어전에 나오면 그는 죽어요. 단 왕이 손에 들고 있는 호를 내어밀면 사람은 살아요. 지금 이 에스더가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이제 왕위 어전에 갑니다. 3일 금식 후에 그리고 왕문 어전 문을 열고 에스더가 지금 앞에 보이는 겁니다. 이때에 이 왕의 손에 있는 홀이 앞으로 내어밀지 아니하면 에스더는 죽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죠. 아세르 왕의 마음속에 에스더가 굉장히 사랑스럽게 보여져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그러자 손에 있는 호를 내어밀면서 왕후 에스더여 어서 오시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뇨 내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이를 통해서 이제 에스더가 하만을 죽이고 유다인들을 구원하고 반대로 유다인들을 대적들을 1212 3일 그리고 14일 이틀 동안 다 죽이고 유대인의 절기 부림저의 절기 이 에스더가 한 연약한 여인으로서 나라를 구원한 위대한 인물이 되어 역시 하나님이 에스더를 쓰신 거예요. 에스더의 어떤 면을 보셨습니까? 에스더는 기도하는 여인이었어 삼촌 걱정하지 마 내가 요즘 왕하고 내가 잘 지내거든. 내가 왕을 구슬르면 왕은 이거 충분히 내가 할 수 있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한 게 아니라, 에스더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 하나님 이민족을 구원하소서 하나님밖에 없나이다. 하나님이 아셔야 됩나이다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왕에게 나아갔더니, 하나님이 그의 있을 때를 뜻인 거예요. 여러분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내가 인정한다는 표현이 기도하는 것 내가 결정하지 않고 내가 먼저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사람을 하나님은 쓰시고 존귀하게 여기셔요 범사에 우리 자문 36절에 범사의 글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랬어요. 범사여 하나님을 인정하며 기도하며 살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시고 그리고 여러분들을 들어서 쓰시 여러분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 되시고 여러분이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쓰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쓰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2.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둘째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사람입니다.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으며 지금 이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발에 힘이 타고 발목에 힘이 생겨서 그가 일어납니다.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는 것은 뭐예요? 믿음의 사람 믿음의 사람 따라서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 둘째는 믿음의 사람을 쓰심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한 것도 믿음이었지만 그냥 니가 일어나라가 아니라 베드로가 손을 잡아서 일으켰어요. 근데 만약에 주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어요.

 

사도들과 지금 거지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있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베드로가 일으켰는데 꼼짝 안 한다. 일어나 걸어라 하는데 꼼짝 안 한다. 베드로는 당시 초대교의 지도자였어요. 열두 사도였어요. 얼마나 챙피하고 무한당하고 자기 영적인 그 벌거벗은 모습이 드러나고 그러니까 아무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믿음의 사람이 행동이에요. 내가 분명히 손을 잡아 일으키면 그는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역사하실 것이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손을 잡아 일으키는 거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내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는 행동이 나에게 없는 거 우리에게 왜 그마만큼 믿음이 연약한 거예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면 우리도 일으킬 수 있는데, 우리도 이런 기저귀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데, 그에 따른 그만큼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 김익두 목사님 원래 유명한 평양 깡패죠 그래서 이 장날에 가면서 성왕당에다 돌 던지면서 오늘 제발 김익도란 놈 좀 안 만나게 해달라고 할 만큼 하면 만나면 다 뺏기니까 그마만큼 유명한 깡패가 스활론 선교사님을 통해서 그가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 변화되어서 이제 이 목사님이 되고, 부흥사가 되고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고 그랬죠 근데 한 분은 이 김익두 목사님이 길가에 이런 걸인 앉은뱅이가 있어요. 똑같은 그래서 이 베드로가 생각난 거예요.

 

베드로의 하나님은 김익두의 하나님인데 베드로가 한 일을 왜 내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거지 앞에서 일어나 할려다 보니까, 만약에 안 일어나면 어떻게 만약에 못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 생각이 만들어서 들쳐 업었대요 거지를 들쳐봐갖고 사람 없는 데 가서 이제 어디 아무도 없는 데 가서 또 내려놓고 나사린 예수의 명령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하고 손을 잡아 일으켜도 응 안 일어나더래요. 왜 베드로는 일어났는데 왜 나는 못 일으킬까 그러면서 다시 얼쳐 갖고 다시 있는 있던 자리에다가 또 놓고 집에 가서 하나님 내가 왜 믿음이 연약합니까?

 

괴기하고 그래 하면서 다음에 또 거지한테 또 갔대요 또다시 업으라고 이 거지는 뭣도 모르고 웬 사람이 와서 자기를 업었다가 왔다 갔다 하니까 그냥 업혀갖고 덜렁덜렁 가다가 또 자리에 한적한 곳에 가서 나사린 예수의 명량은 일어나 걸어라 하면서 잡아도 안 일어나 큰아들이에요. 그래서 다시 인제 또 업어다가 미안하다고 또 자리에다 갖다 놓고 집에 가서 엄청 순하게 회개했대요 뭔 차이냐 베1호와 나는 믿음의 차이다. 내가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서 내가 목사한다고 부흥사한다고 있구나 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귀했다는 그런 이 김익도 목사님의 일화가 있어요. 여러분 저보고 그런 얘기를 하라면 저도 잘 못할 것 같아요. 믿음의 차이예요. 믿음의 차이예요. 우리 하나님은요, 이 기적을 누구에게 베푸느냐면 믿음의 사람에게 베풀어요.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믿고 의지하고 그대로 될 줄 믿으면 그대로 일어나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우리의 믿음이 약한 거예요. 믿음이 약한 거예요. 근데 그 믿음의 양이 있어요.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어요. 구원받는 믿음 말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나이를 위해서 죽으신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신 이것은 없고예요. 이건 있는 사람은 천국 가고 없는 사람은 지옥가요 그런 믿음 말고 역사하는 믿음 은사적인 믿음 이런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 이건 은사예요. 은사 이 믿음은요, 큰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이 믿음이 누구에게 나타나느냐 그대로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이런 역사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믿음 있는 사람의 특징은요, 순종합니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거예요.

 

오늘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어요. 이게 베드로의 믿음이었어 믿음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거예요. 베드로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수도 없이 많은 기적 현장을 체험해서 죽은 자 살리는 거 봤고 귀신들린 자 쫓겨나는 거 봤고 앉은뱅이뿐만 아니라 모든 병자들 고치는 걸 수도 없이 봤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어요. 올라가시면서 요한복음 1412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오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을 나는 믿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는 일을 나도 한다고 했어. 더 나아가서 그보다 큰일도 한다고 그랬어. 예수님이 틀림없이 이런 병자를 고치셨으니 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병자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일으킨 거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쓰신 거예요.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느냐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믿음의 사람 베드로가 많은 기적들을 베풀었습니다. 심지어요. 병든 사람이 있으면 베드로가 가는 데에 뉘어놔요 그러면 베드로가 가면 그림자만 베드로의 그림자만 닿아도 사람이 일어날 정도로 베드로는 능력이 많이 있었어요.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이 큰일들을 하신 거죠. 한 번은 사도행전 9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어요. 과부예요. 그런데 선행을 너무 많이 하는 여인이었어요. 바느질로 해서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그런데 다비다가 죽었어요. 그러자 수많은 여인들이 다비다를 시체를 놓고 슬퍼하는 거예요. 그리고 베드로를 청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이 다비다를 좀 살려주세요. 하면서 속옷과 겉옷을 보이면서 이 여인이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좋은 일들을 했는데 이 여인이 죽으면 안 됩니다. 살려주세요. 그러자 베드로가 다비다를 향하여서 한 행동이 있어요. 이게 베드로의 믿음이거든요. 산이행전 9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지금 다비다의 시체 앞에서 사람들 다 내보내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 이 여인을 살려 주옵사서 이 여인의 영혼히 돌아오게 하옵사서 하면서 기도한 후에 시체를 향하여서 병든 사람을 위해 상하여서가 아니에요. 시체를 향하여서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향하여서 뻣뻣하게 죽은 사람을 향하여서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자 다비다의 눈이 떡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어요. 이게 베드로의 믿음이에요.

 

여러분 죽은 시체를 향하여서 일어나라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은 아무나 갖는 믿음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셔요 믿음이 큰 사람에게는 크게 역사하시고 믿음이 작은 자에게는 작게 역사하셔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믿음을 키워야 돼요. 큰 믿음을 가져야 돼요. 그리고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에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사람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로마서 417절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미 아버지 하나님은 누굽니까 죽은 자 살리는 하나님이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요를 창조 아무것도 없는데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있고 아무것도 없는데 테드리스라면 새가 있고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분이 전능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믿음대로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돼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나사로 배단 위에 나사로가 죽었어요. 무덤에 집어넣었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돌을 파고 거기다 집어넣고 돌문으로 문을 가로막는 그러한 무덤 형태입니다. 하루 이틀 사흘 됐어요.

 

당시 날씨가 여러분 더워서 4일 되면 이미 시체가 상당히 부패한 상태예요. 예수님께서 그때 4배단이 나사로의 집에 와서 나사로 어따 두었느냐 묻었습니다. 무덤에 가보자 해서 많은 사람들 두 여인 마리다와 마리아 많은 동네 사람들 그래서 제자들 해서 무덤에 갔더니, 이미 가까이 가자마자 썩은 냄새가 팍팍 나요? 그러니까 무덤 앞에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도를 옮겨 놓아라 그래요. 도를 옮겨 놓아라 하니까 죽은 지 나흘 되어서 이미 썩은 냄새가 납니다 하면서 옮겨놓지 않는 거예요. 그러자 이 요한복음 1140에 예수님이 내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라 그러면서 말에 돌을 옮겨 놓습니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썩은 냄새가 팍 나와요.

 

그때 무덤을 향하여서 예수님이 나사로의 야 나오너라 그러자 나사로가 수족을 배로 동인 채로 걸어서 나와요. 사람들이 확 영광을 돌리죠 기적을 체험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도를 옮긴 게 아니라, 돌을 스스로 옮기도록 했어요. 이건 우리의 믿음의 행동을 원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씀하신 것이 니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네가 기적을 체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때에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거예요. 해당장 야이로의 집에 갔더니, 12살 먹은 딸이 죽었어요. 다 헌호하면서 죽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들을 다 돌려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세 제자만 그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죽어있는 12살 딸을 향하여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고 소녀를 일으켜서 그를 살리게 했어요. 여러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적을 볼 자격이 없어요. 다 돌려보내는 거예요. 기적을 본인이 일으킬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적의 현장에 있을 자격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 돌려보내고 그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제자들만 들어가서 기적의 현장을 눈으로 보게 한 거예요. 믿음의 사람들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믿음으로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쳐줄 때 기적을 행할 때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랬어요. 믿음대로 될지어도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식적으로 사는 사람은 기적을 죽었다 깨라도 체험 못 해요.

 

계산적으로 사는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어요. 자기는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죠. 자기는 모든 것이 사리분별하고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먼저 계산해서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자기는 똑똑한 것 같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기적을 체험할 수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곱 집사를 가리켜서 기적이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뽑으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너의 능력 믿지 말고 너의 형편 보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라 그러면 하나님이 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거예요. 이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을 쓰시는 거예요. 페드로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것은 그냥 한 번 해 해본 게 아니라, 하나님은 분명히 이 사람을 일으켜 줄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일으킨 거예요. 이 믿음의 사람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에요.

 

여호와께 쓰임받는 사람은 첫째, 제 구식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

들째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을 쓰십니다.

 

3.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셋째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한 사람입니다.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말씀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쓰시는 사람은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을 쓰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 이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서 일어나 걸으라 한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어요. 베드로이의 마음속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어요. 예수님을 붙잡았어요. 여기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그랬어요.

은과 금을 가지고 이 앉은 매기를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은과 금은 여러분 못하는 것이 많아요. 이 세상에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못할 것이 없어요. 따라서 여러분들이 은과 금을 붙잡고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야 돼요. 그러면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김희영 목사가 뭐 똑똑한 게 뭐 있습니까? 잘난 게 뭐 있습니까? 제가 뭐 공부를 많이 했습니까? 제 뭐 성품이 남달보다 뭐 성자처럼 좋습니까? 뭐 말을 잘합니까? 가문이 훌륭합니까? 책 한 권을 썼습니까? 제가 영어를 잘합니까? 헬라우 히브리어를 잘합니까? 뭐 세상 정세를 잘압니까? 저는 별거 정말 내놓을 것이 없고요.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에요.

 

정말 그런 사람 이건 뭐 내가 겸손하다는 걸 표현하다는 게 아니라, 김희영 너는 뭘로 봐도 정말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뭣도 잘하고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아니면 뭘 더 뭐 잘 알더라 근데 나는 솔직히 얘기해요. 나는 뭐 아는 게 없었어요. 말을 섞지를 못해 다른 사람들하고 아는 게 없어요. 정말 아는 게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하나님은 쓰셔요 제가 쓰임받는 것은 사실 첫 번째 기도하는 사람 저는 그렇게 기도 많이 못 해요. 죄송합니다. 기도 많이 해야 되는데 저는 뭐 기도하는 사람이라서 제가 쓰임받는 건 별로 아닌 것 같아요. 또 제가 믿음의 사람 저는 시체를 향하여서 이런 나라 거래를 한번 해보기는 했어요.

그 영안실에서 아니면 저도 어렸을 때 아니 뭐 부목사 때 염 저도 담임 목사님 따라서 많이 하기도 했고 근데 베드로가 시체를 향하여서 다비다야 일어나라 했는데 나는 못할 바냐 해서 시체를 향하였어. 일어나라 숨아 일어나라 했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래도 눈 하나 끔뻑 안 하더라고요. 저 베드로 같은 믿음이 뭐 이거 자랑도 아니고 그래야 된다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믿음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셋 중에 하나 하나 뭔가 있다면 그래도 저는 예수님 붙잡는 사람이에요.

 

저는 은과 금 붙잡고 사는 사람이야 은과 금이 있지도 않고 오직 저는 예수님 한 분으로 나는 죽기 살기로 각오한 사람이고 예수님 한 분 나는 붙잡고 평생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고 내가 예수님 붙잡은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나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 한 분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에 예수님까지 놓쳐버리고 내가 은금 찾으러 다니고 세상 권세 찾으러 다닌다면 나는 하나님이 나를 놔버릴 거예요. 나는 그걸 알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못 놓는 거예요. 아니 예수님이 저를 안 놓으시는 거예요. 예수님 한 분 붙잡고 사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어요. 은금히 못하는 것 예수님은 다 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예수님 한 분만 붙잡고 사세요. 이거 뭐가 어렵습니까?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창조주 하나님 이 땅에 은금이 못한 것을 예수님은 나를 다 해 주시는 예수님 하나 붙잡고 사는 것 이거 하나 붙잡고 살 때에 예수님은 그걸 모시고라도 나를 여러분을 쓰시는 곳 뭐예요? 여러분 모세를 하나님은 쓰십니다. 고약의 유명한 두 인물을 찾는다면 모세와 다윗입니다. 모세를 그마만큼 위대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그러면 모세를 그가 쓴 것은 40년 동안 애급에서 학술과 학문과 지혜를 다 배워서 그것 때문에 썼느냐 모세보다 말 잘하는 사람 얼마나 많아요. 모세보다 능력 있는 사람 얼마나 많아요. 모세보다 학술이 뛰어난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하나님이 쓰셨는데 쓰신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히브리서 1124-26절 이하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바로의 공주의 아들 얼마나 큰 거예요. 여러분 낙을 누리는 것 바로 왕궁에서 낙을 누리는 게 얼마나 큰 거예요. 그런데 그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어요. 이게 무엇의 삶이었어요.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시는 이심을 바라봐 여러분 모세 당시 무슨 그리스도가 있습니까? 다 여호와 하나님이죠.

근데 여러분 이 모세의 모습을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서 구약에도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일 모세는 예수님을 위하여서 받는 수모를 애급의 모든 금은 보화보다 더 귀하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모세를 쓰신 이유는 예수님 붙잡았어요. 당시 말로는 하나님 붙잡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쓴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 있어도 예수님 놓치고 다른 거 붙잡으면 예수님이 버립니다. 예수님이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 손 떼버리면 우리는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아도 예수님 한번 붙잡으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쓰십니다. 반드시 여러분을 존교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붙잡고 우리는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요, 지금도 시편14: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즉 지금 하늘에서 이 땅에 있는 지금 인구가 80억 됐다고죠 하늘에서 지금 살펴보고 계셔요 내가 누구를 쓸까 내가 누구를 쓸까 에레미야 5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루살렘의 수만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 지금도 하나님은 쓰시고 찾고 있는 사람이 있고 찾고 있는 교회가 있고 찾고 있는 민족이 있어요.

 

그게 우리 민족이 돼야 되고 그 교회가 우리 학성장로교회가 돼야 되고 찾고 있는 가정 찾고 있는 사람이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왜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되니까. 하나님께 쓰임받아야 되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느냐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서 기도하는 사람을 쓰셨고 또한 믿음의 사람을 쓰시고 예수님 붙잡는 사람을 쓰셔 이 세 가지 다 하면 좋겠지만, 그중에 뭔가 하나라도 하나라도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중에 하나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쓰실 만한 뭔가 구석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기도하는 사람 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사람 되시고요. 예수님 붙드는 사람 되어서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